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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위대함 (1) - 모든 걸 설명하는 "아 그게 좀 그래..."한국어, 사랑합니다 2021. 10. 1. 10:56
안녕하세요, 한국어를 매우 사랑하는 랭마스터입니다.
제가 영어를 제대로 익혔다고 하기 전에 갖가지 소통과 과제를 해야했던 그 어렵던 시절을 상기해볼 때,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단어도 아니고 발음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어려웠던 건 맥락에 따라 특정 주어나 형용사를 아울러서 이야기하는 "그게 좀 그렇다" 이런 한국적인 표현이 영어에 전혀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국어는 맥락에 크게 의존하는 언어이지요. 우리에게 쉽지만 외국인한테는 더없이 어려운 이 맥락과 눈치로 알아듣는 표현들...오죽하면 화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대화는 주어를 안 넣어도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화자 자신을 칭하는 걸 화자도 청자도 제 3자도 아는 매직언어죠.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아 그래서 어제 강남역에 갑자기 가게 됐는데 거기서 좀 그런 일이 생긴거야."
말하는 사람이 "내가" 라고 하지 않았지만 듣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아 본인 얘기군 이라고 납득을 합니다. 거기다가 "좀 그런 일"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어떤 사건이라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죠.
여기에 더하여 한국어는 문장의 끝에 가야 비로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언어문화 상 처음에 좀 그런 일이라는 모호한 말을 한 다음 그것이 뭔지 부연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또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영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정 반대이며,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때 단어로 낱낱이 구체화해야 하죠. 아무리 모호하게 한다해도 "이상하다" 정도의 단어는 쓰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So I ended up going to A station where something weird happened."
거기다 중요한 말은 문장 내에서도 전체 내용에서도 먼저 오는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위 예시문은 일부러 적어도 어순은 크게 다르지 않은 걸로 만들어 봤는데 이 이후에 오는 말은 뭐가 됐든 앞부분에 중요한 내용이 오겠죠. 왜냐구요?
모두 아시다시피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앞에 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언어 체계가 빨리빨리 돌아가며 성과를 내야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득을 많이 얻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어와 한국어 언어문화를 깎아내리면서 보고하고 설명하기 쉬운 영어의 전체적인 틀을 칭송하지요. 보고서는 이렇게 써야 한다. 발표는 이렇게 해야 한다 등등..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특히 문장이 길어지면 대부분은 해석을 달리하거나 까먹기 때문에...ㅋㅋ
그렇지만 전 여지가 있는 한국어 언어문화가 참 좋습니다. 단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오해의 소지도 매우 크다는 점이지만, 그건 서로간에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똑같이 넓은 것에 비하면 나름 극복 가능한 사안이니까요.
제가 말하는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똑같이 넓다는 건 이런 겁니다. "그 왜 빨간색에 가까운데 노르스름한 색깔도 섞여있고 주황빛에 뭔가 그윽한 느낌을 주는 석양 그런 거 있잖아~"
우리 한국인은 그림으로 그리라면 좀 다르게 그려도 이게 뭔지는 똑같이 상기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긴 문장에서 구체적인 건 빨간색과 석양 뿐인데도 말이죠?!
영어도 하라면 그런 표현을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친한 친구 아니면 일반적인 관계에서 저렇게 말했다간 거의 교환일기에 쓰는 코드 정도로 보입니다. 애초에 구체성이 결여되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도대체 하고싶은 말이 뭔지 규명하라는 답답함을 호소하죠 ㅋㅋㅋ.
시작부분에서도 얘기했지만 전 한국어를 매.우. 사랑합니다.